조바심을 누르고 숙고의 길을 찾으며 또한 뒤로 멀찍이 물러서는 일 또한 서슴지 않는 것, 요구 사항이 시급하고 과제가 절박했을 때조차도 바로 그렇게 했던 것이 언제나 독일 정신의 강점이었다. 쿠자누스, 라이프니츠, 칸트 그리고 헤겔이 바로 그러하였다. 이러한 노선에서 벗어나 단순화와 일면화에서 오는 모든 위험이 뒤따랐던 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독일 정신의 그러함은 근본적으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과제가 더 없이 절박할 때, 진정한 철학은 근본에로 되짚어 내려가는 법이다. 새로운 세계 정황 가운데서 새로운 사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길밖에는 없다.
- 니콜라이 하르트만(지음), 손동현(옮김), <<존재론의 새로운 길>>, 서광사, 1997, 14쪽.
090618
'클래식(classic)'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형용사이며 처음부터 '고전적'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클라시쿠스'는 사실 '함대(艦隊)'라는 의미를 가진 '클라시스(classis)'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 '클라시쿠스'라는 형용사는 로마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국가를 위해 군함을, 그것도 한 척이 아니라 함대(클라시스)를 기부할 수 있는 부호를 뜻하는 말로,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리켰다. (...) 인간은 언제든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작품을 가리켜 '클래식'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
일본에서는 '클라시스'에서 유래한 '클래식'을 '고전'이라 번역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소중하게 여겨온 서적(典), 요컨대 고전이 그러한 교화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클래식'의 번역어로 선택된 것이다. '典'은 상형문자로 (...) 다리가 달린 책상 위에 옛 책의 형태인 두루마리를 소중히 올려놓는 것을 의미한다.책상 위에 올려 둔다는 것은 '읽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늘 열심히 읽는다는 뜻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지음), 이영미(옮김),《단테 신곡 강의》, 안티쿠스, 2008, 14-16쪽.
단테는 인간적인 갖가지 욕망, 야심에 무릎을 꿇고, 타락한 생활에 빠질 뻔했던 적도 있다. 서른다섯이 지나면서 권력도 쥐었고, 주위에서는 단테의 말을 들었다. 갖가지 유혹들이 신변에 생겨났다. 그러한 때, 타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선택되어 피렌체를 더 낫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자부, 시인으로서의 자부,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시성 베르길리우스처럼 자긍심 높게 그리고 훌륭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 같은 책, 174쪽.
나를 거쳐서 고통스런 마을로 가고
나를 거쳐서 영원한 고통 속으로 가며
나를 거쳐서 저주받은 무리 속으로 간다.
정의는 지존이신 나의 창조주를 움직이시어
성스런 힘, 최고의 지혜와
태초의 사랑으로 하여금 나를 이루셨도다.
나보다 먼저 창조된 것이란 영원한 것 이외엔
없으니, 나는 영원토록 남아 있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
- 단테 알레기에리(지음), 한형곤(옮김), <<신곡>>, 서해문집, 2007. 59-60쪽.
단테는 이 9행으로 그때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지옥의 정의를 시적으로 표현했다. '지옥이란 일체의 바람, 희망이 없는 곳이다.' 그러한 지옥이 우리의 지면과 같은 높이의 땅에 문을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지옥문 밖에 모든 희망을 남겨 두어야만 한다. 지옥이란 절망의 장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 세상에 사는 우리가 정말로 절망한다면 그것이 바로 생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하로 떨어지지 않아도 관계없다. 단테 생각으로는 모든 희망을 남겨 두고 들어가는 것이 지옥이다. (...) 여러 번 반복해 낭송하다 보면, 지옥문이 말하는 '나'가 암송하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을 내 말이나 행위로 고뇌의 도시로 보낸 일은 없었을까. 남에게 좌절을 안겨 준 일은 없었을까.
- 이마미치, 188-191쪽.
무릇, '해석'은 '의미 부여'와는 다르다. 의미 부여는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작품에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해석'이라 칭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 ' 의미 부여'와 '의미 발견'은 그 차이를 자연과학 실험처럼 확연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단테가 '지옥은 정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맨 처음에 썼던 말을 마음 깊이 새겨 두면, 우리가 단테의 지옥을 통해 무엇을 발견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하는 갈피를 잡을 수 잇다. 단테의 지옥도는 '지옥을 통해 신의 정의를 깨우치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 우리가 고전을 접할 때 중요한 자세는 '의미 부여'가 아니라 '의미 발견'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같은 책, 281쪽.
연옥에는 혼이 씻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어쩌면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처럼 희망이 있다는 점이 지옥과는 완전히 다르다. (…) 연옥에는 별이 보인다. 그리고 이 별은 서양 문학 속에서는 적어도 네 가지 의미가 있다. (…) 별은 이상의 네 가지 정신적인 힘 - '목표,길잡이', '희망', '이상', '동경,사랑' - 의 상징으로 일컬어져 왔다.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세계가 지옥이다.
(…) 별을 보며 잃어버렸던 이상에 대한 동경을 떠올리고 '좀 더 훌륭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연옥의 행위와 같다.
- 같은 책, 300-302쪽, 310쪽.
전례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나 자신의 죽음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저 사람에게는 정말로 신세를 많이 졌다. 부디 천국에 가길 바란다'라고 한순간만이라도 진지하게 기원한다면 그 사람은 그 순간만큼은 대지로부터 벗어난다. 전례가 가지는 종교적 분위기는 결코 시대에 뒤떨어지는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단테가 말하는 '땅에 처박혀' 있는 데에서 인간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하는 일이다.
- 같은 책, 352쪽.
연옥 안에서는 단순히 자기가 과거에 무엇을 했던가를 반성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영어로 말하면, 평범한 반성은 what I did '내가 했던 것'을 돌이켜보는 일이다. 그것은 그에 대한 보완을 하면 끝나 버린다. 만약 남에게 맡았던 소중한 물건을 실수로 잃어버렸다면 똑같은 물건을 사 주면 그걸로 끝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what I did 와 관련한 의식만으로는 깊은 반성이 될 수 없다. 그게 아니라 what I was '나는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고, 그리고 who I am '나는 어떠한 인간인가', '나는 과연 어떠한 인간인가, 나는 누군인가' 라는 자기 페르소나를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같은 책, 389쪽.
단테는 이제 자기 발걸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자 마치 시험과도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난다. 그 젊은 여인은 단테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름다운 꽃을 따면서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데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고 만다. 스승이 곁에 있긴 하지만 스승의 안내로부터 벗어나 독립의 걸음을 시작하는 일의 어려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을 때처럼 훤히 보이는 길로 걸어가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걸어가야 할 길을 정하고 이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속해야 하는 일의 어려움이 표현되어 있는 건 아닐까.
- 같은 책, 411쪽.
인간은 신의 무한한 사랑을 담는 그릇으로 창조되었다. 이 점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 같은 책, 587쪽.
어둠 속에 처한 이에게 등불이 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이요 사랑이다.
090618
공자께서는 '백이,숙제는 해묵은 미움을 생각하지 않았고, 원망하는 일이 드물었다.' 또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 (과연 그들은)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혹자는 말한다. (…) 이처럼 인을 쌓고 깨끗한 행동을 하였는데 굶어 죽고 말다니! 70명의 문도 중에서 공자는 안회만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추켜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안회는 굶기가 일쑤였고 술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여 베푸는 것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도척은 매일같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고기를 먹었으며, 흉포한 행동을 제멋대로 하면서 수천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결국 천수를 다하였다. 그가 무슨 덕을 따랐기 때문이란 말인가? (…) 도대체 이른바 천도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 사마천(지음), 이성규(편역), <<사마천 사기>>, 서울대출판부, 2008, 127-128쪽.
사마천은 자연과 인간(자유)의 관계를 구명하고자 했다. 백이,숙제를 열전 첫편에 다루면서 덕(가치)과 쾌락(사실)의 괴리 문제를 제기했다. 자연과 자유의 통일 문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가 풀고자 했던 문제다. 마지막 편인 <화식열전>에서 사마천은, 스스로 증식하는 돈(자본)의 속성을 기술하며 부의 축적이 인의,도덕 같은 문제와 완전 무관하다고 말한다. 역사의 인물들을 바라보는 사마천의 사관은 정신의 도야와 덕을 향한 추구에서 시작해 물질을 향한 욕망으로 끝맺은 열전의 형식미에 뚜렷이 드러난다.
090611
野人載酒來 야인재주래, 하여 / 농부가 술을 가지고 찾아와서는,
農談日西夕 농담일서석, 이라 / 농사 이야기로 해가 이미 기울었네.
此意良已勤 차의량이근, 하니 / 이렇게 찾아준 뜻 참으로 고마워,
感歎情何極 감탄정하극, 고 / 마음에 스미는 정 얼마나 지극한가.
歸去莫頻來 귀거막빈래, 하라 / 돌아가거든 자주 오지는 마오,
林深山路黑 임심산로흑, 이라 / 숲이 깊고 산길이 어두우니.
- 주희
- 황견(엮음), 이장우 외(옮김), <<고문진보>>, 을유문화사, 2007, 77쪽.
강냉이가 익걸랑 와 자셔도 좋다는 수수방관보다는 이런 게 좋아.
090611
그러나 혼자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나아가며 모든 일에 아주 조심하리라고 나는 결심하였고, 그렇게 하면 아주 조금씩 전진한다 해도 넘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 르네 데까르트(지음), 최명관(옮김), <<방법서설, 성찰, 데까르트 연구>>, 서광사, 1983, 19쪽.
090607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 십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은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테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군주의 처신에 관해서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을 생략하고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을 고려하겠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지음), 강정인 외(옮김), <<군주론>>, 까치, 2003, 107-108쪽 (제15장)
사랑을 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었다. 내 견해는 사랑도 받고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둘 다 얻기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인간 일반에 대해서 말해준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는 것이다. 당신이 은혜를 베푸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게 온갖 충성을 바친다. 이미 말한 것처럼, 막상 그럴 필요가 별로 없을 때,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자신의 소유물, 생명 그리고 자식마저도 바칠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당신이 정작 궁지에 몰리게 되면, 그들은 등을 돌린다. 따라서 전적으로 그들의 약속을 믿고 다른 방비책을 소홀히 한 군주는 몰락을 자초할 뿐이다. (…)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 자를 팽개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항상 효과적이다.
- 같은 책, 117-118쪽 (제17장)
마키아벨리는 가치 세계를 정치 영역에서 떼놓았다. 정치 영역에 들어섰던 가치 세계가 줄기차게 패배했던 역사의 광경을 참으로 매몰차게 기술했다. 정치 여역에서 가치와 사실의 분리는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 영역에서 사실 세계와 가치 세계가 다시 공존할 수 있을지 없을지 논하지 않았다. 가치의 부활을 촉구한 토마스 모어는 집권자에 의해 사형당했으나, 담담히 사실만 기술한 마키아벨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 글에서 경멸하는 '인간'이라는 보통명사가 무척 거치적거린다. 군주론의 독자는 군주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보통명사 속에 고인 찝찝함, 저열함, 그리고 그런 더러운 것들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군주를 세우거나 그의 통치를 받는 신민의 것이다. 저자의 날카로운 혀는 독자의 가슴을 후벼파낸다. 그건 나쁘지 않다. 싸우려면, 적어도 지지 않으려면 먼저 각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090422
참다운 개혁가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도 아니며 또한 시기에 적절하게 그리고 시기에 맞지 않게 그러한 개혁의 필요성을 설교하는 사람이 아니다. 참다운 개혁가는 개혁을 달성하는 사람이다.
에띠엔느 질송(지음), 강영계(옮김), <<중세철학입문>>, 서광사, 1983, 71쪽.
090401
<<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 위대한 전사의 용기이자 그의 영웅적 행동의 뿌리인 이 분노는 결국 영웅이 파멸하는 원인임이 밝혀진다. 이는 인간의 비극적 상황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 [오뒷세이아는] (…) 영웅 오뒷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고된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인가? 영광스런 군사적 승리, 평온한 가족의 행복, 또는 다른 어떤 것인가?
마크 C. 헨리(지음), 강유원 외(옮김), <<인문학 스터디>>, 라티오, 2009, 37쪽.
셰익스피어는 시적 상상이라는 거울을 모든 자연과 역사에 비춘다. (…) 그는 '실재한 인생'의 이야기, 즉 역사적 인간의 생애가 신화적 이야기만큼이나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그가 줄거리를 허구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점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놀랍고도 뛰어난 점이다. (…)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의 인물들에 가장 깊이 끌린다. 그들은 900여 명이나 되지만 각각 다른 인물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이며, 각자 자신의 삶을 가지고 있다. (…) 맥베스에게 "인간적 면모가 가득"하다면, 리처드 3세는 무자비하게 사악하다. 맥베스의 야망이 명예를 중심으로 한 허영의 문제라면 리처드 3세의 야망은 권력지향적이고 자만심에 의해 생긴 것이다. 맥베스가 약한 곳에서 리처드 3세는 강하다. (…) 사랑은 저급한 어떤 것에서 시작하거나 우리를 타락하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숭고한 것이 될 수 있다. 그의 희극은 언제나 인간 사랑의 신성한 완성인 결혼으로 끝난다. 셰익스피어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같은 책, 46-49쪽.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생물학, 자연학, 천체의 운행 같은 자연(physis)의 움직임을 알고자 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알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다. (…) 소피스트들은 인간사에 보편적 진리는 없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사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 인간사를 다루는 방법론뿐이다. 결국 그들에게 배움의 핵심은 지혜가 아니라 힘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을 가장 강하게 비판한 '철학자'였고 힘보다는 '지혜를 사랑한 자'였다.
같은 책, 63-64쪽.
근대에 관한 지성사적 통찰에서 고려해야만 하는 주요한 계기들은 30년전쟁(1618-1648)과 프랑스혁명(1789)이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갈라진 두 세력 사이의 쟁투에서 시작된 30년전쟁은, 초인적 신의 지배로써 유지되던 세계가 결정적으로 무너지고 그 자리에 국가의 지배가 자리잡게 된 사건이다. 지배권을 쥐려는 종파들 사이의 싸움이 종교 그 자체를 무너뜨린 것이다. (…) 프랑스혁명 이후 세계는 인간과 신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더 정확하게는 인간 집단과 인간 집단의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변화하였다. (…) 칸트는 (…) 계몽주의의 이성 중심주의, 프랑스혁명의 인간 해방 등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하나의 체계로 수렴하려 한다. 그의 중심은 '인간'이고, 이는 다시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로 나뉘어진다.
같은 책, 75-78쪽.
고전 철학자들이 탐구의 주제로 삼았던 자연은 정의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고전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영원히 미리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된다. 우주는 시초를 가질 수도 없으며, 그에 따라 끝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의 역사철학은 반드시 역사를 순환의 관점에서 고찰하게 된다. 자연이 순환, 즉 계절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사도 순환한다. 원리적으로는 태양 아래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고대 철학자들은 계시종교의 출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신의 아들 예수를 섬기는 기독교의 계시에 대해 그러했다. (…) 기술적 진보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은 시간을 순환적인 것이 아닌 선형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가능한데, 시간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바로 계시종교가 도입한 것이다.
같은 책, 139-140쪽.
090124
대상으로부터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혐오'는 공포라고 한다.
저항하면 그 해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혐오'는 용기라고 한다.
돌연한 '용기'는 분노라고 한다.
변함없는 '희망'은 자신이라고 한다.
변함없는 '절망'은 자신없음이라고 한다.
- 토마스 홉스(지음), 진석용(옮김), <<리바이어던1>>, 나남, 2008. 82쪽.
인간은 경쟁 때문에 이익확보를 위한 약탈자가 되고, 불신 때문에 안전보장을 위한 침략자가 되고, 공명심 때문에 명예수호를 위한 공격자가 되는 것이다. 첫째는 타인과 그들의 처자권속 및 가축들을 지배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방어를 위해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며, 셋째는 한마디 말, 혹은 단 한 번의 웃음, 혹은 의견의 차이 등, 자신의 신상이나 자신의 친척, 친구, 민족, 직업, 가문에 대해 얕잡아보는 사소한 표현들 때문에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싸움 혹은 전투행위의 유무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란 시간에 관한 개념으로서 일정한 기간에 걸쳐 전투와 의지가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기간 동안은 전쟁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날씨를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두 번의 소나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날에 걸쳐 비가 오락가락 할 경우 일기가 불순하다고 말한다.
- 같은 책, 171쪽.
081216
언젠가는 없어질 것을 부라고 부르지 마라. 덕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재산이며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누리는 상급이다. 덕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의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지음), 안중식(옮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첩>>, 지식여행, 2005, 27쪽.
덕이라는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에게 대적하는 질투를 분만하고 만다. 아마도 질투 없는 덕을 기다리느니,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물체를 찾아나서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 같은 책, 36쪽.
081001
케플러는 무엇이든지 털어 놓았다 - 개인적인 감정, 무서운 유년 시대의 굴욕, 건강에 대한 경시, 자기 아내의 결점, 그리고 그것을 어리석게도 공격했다는 것 등을. 만약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이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케플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별을 관측하기에는 너무 근시여서 계산만 할 수밖에 없엇다. 그는 또 자기의 학문에 대해서도 모로지 말했다.영감과 억측, 잘못된 출발과 실망, 자신의 어리석음과 오류, 최후의 멋진 승리 등을. 이런 것들이 단조롭고 고된 삼각법의 어두운 조수와 함께 과학적 의식의 급류가 되어서 풍부한 비유와 상징을 동반하며 페이지 위에 넘쳐 흘렀다.
찰스 길리스피(지음), 이필렬(옮김), <<객관성의 칼날>>, 새물결, 2005, 58쪽.
"자연을 알려고 하는 자는, 운동을 이해해야 한다." 이 말은 레오나르도의 금언의 일절이다. (...) 데카르트는 관성의 원리를 정확하게 서술했다. (...) "어떤 물체도 그 운동을 곡선이 아니라 직선으로 계속하려고 한다. 모든 곡선 운동은 무언가의 구속을 받는 운동이다."
같은 책, 116쪽.
080925
신(deus)은 희랍어로 나는 본다(theoreo)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 본다는 것이 색을 파악할 수 있기 위하여는 본다는 것 자체는 색이 없는 것이어야만 된다. (...) 신은 존재자를 보게 됨으로써 창조한다. (...) 가시적인 것은 보여진 것으로서, 주시하는 신 속에 아직 감싸져 있는 것이 모사적으로 펼쳐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시적 모상은 이미 언제나 있으되 불가시적인 것으로 있으며 형성하는 원상인 창조자 안에 있다. (...) 보는 것이 보여지는 것 없이는 나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존재자 없이는 신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보여지는 것이 보는 것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이 없이는 존재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자는 볼 수 있게 된 신이다. (...) 쿠자누스는, 신은 늘 창조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곧 신은 모든 존재자 안에 존재하며 그리고 모든 존재자는 또한 신 가운데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인간은 단지 신에 의하여 보아진 자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신과 닮았다. 그리고 형성하면서 보는 것이다. 인간도 역시 존재자를 현현시킬 수가 있다.
발터 슐츠(지음), 이정복(옮김), <<근대 형이상학에 있어서 철학자의 신>>, 사랑의학교, 1995, 35-37쪽.
080809
치어 떼처럼 망막 위를 헤엄치는 빛의 산란
꿈속에서조차 나는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
숨 꾹 참고 강바닥을 걸어 도강(渡江)한다
-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일부
080803
맹자를 더욱 실망시킨 것은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한 일이다. (...) 제나라가 군대를 동원해 연나라를 쳐서 30일 만에 연나라를 전부 점령한다. (...) 맹자는 왕에게 곧장 군대를 철수하고, 연나라 백성들과 의논해서 연나라에 새 군주를 세우라고 권했다. 그러나 선왕은 맹자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연나라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제나라 군대를 나라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 제나라에서 할 일이 없어지자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기로 한다. 떠날 때가 되자 맹자의 심정은 모순되면서 침통했다. 여러 해 동안에 걸쳐 노력한 결과는 고독 속에 제나라를 떠나는 것이었다. 제나라 국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맹자는 꼬박 3일을 머문다. 그 이유는 마음에 한 가닥 환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왕이 크게 깨달아 사람을 보내 그를 붙잡으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환상도 그의 일방적인 생각에 불과했다.
양구오롱(지음), 이영섭(옮김), <<맹자평전>>, 미다스북스, 2005, 32-33쪽.
맹자가 말했다.
"사람마다 모두 남에게 잔악하게 굴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선왕들은 차마 남에게 잔악하게 굴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남에게 잔악하게 굴지 못하는 정치가 생겨났던 것이다. 차마 남에게 잔악하게 굴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차마 남에게 잔악하게 굴지 못하는 정치를 실시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그것을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책, 69쪽.
080719
그 당시의 젊은 미술가들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의 유행에 휩싸여 단순히 그의 수법(manner)만을 모방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보는 후대의 비평가들은 이 시기를 가리켜 매너리즘(Mannerism) 시대라고 불렀다.
곰브리치(지음), 백승길 외(옮김), <<서양미술사>>, 예경, 1997, 361쪽.
반에이크는 작은 개의 곱슬곱슬한 털 하나하나를 모사하는 데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반면에, 그로부터 이백 년 뒤의 벨라스케스는 개의
특징적인 인상만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레오나르도처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한층 꼭 필요한 것만을 묘사하고 보는 사람에게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비록 그는 털을 하나도 그리지 않았지만 그의 작은 개는 사실상 반 에이크의 개보다 훨씬 더 털이
북실북실하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19세기의 파리에서 인상주의의 창시자들이 과거의 어느 다른 화가들보다도 벨라스케스를 존경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효과 때문이었다.
자연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관찰하며 색채와 빛의 새로운 조화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화가의 기본적인 과제가
되었다. 유럽의 가톨릭 진영에 살았던 위대한 미술가들이나 정치적 장벽의 또 다른 쪽인 신교도의 네덜란드에 살던 위대한
미술가들이나 이 점은 모두 같았으며 이러한 새로운 임무에 그들의 열정을 쏟았다.
같은 책, 411쪽.
렘브란트는 그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아주 성실하게 관찰했다. 우리가 이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용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성실성 때문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이다. 여기에는 포즈를 취한 흔적도 없고 허영의 그림자도 없으며 다만 자신의 생김새를 샅샅이 훑어보고, 끊임없이 인간의
표정에 내포되어 있는 비밀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탐구하려는 화가의 꿰뚫어보는 응시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심오한 이해가
없었다면 렘브란트는 그의 후원자이자 친구이며 후에 암스테르담의 시장이 된 얀 지크스의 초상화 같은 위대한 작품들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프란스 할스의 생생한 초상화와 비교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할스는 우리에게 실감나는 스냅
사진 같은 느낌을 주는 반면에 렘브란트는 인물의 전생애를 다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같은 책, 422쪽.
그가 그린 해바라기, 빈 의자, 사이프러스 나무, 그리고 몇몇 초상화들은 천연색 복제판으로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 평범한 실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고흐 자신이 원했던 것이다. (...) 그는 돈많은 감식가의 마음만을 만족시키는 세련된 예술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쁨과 위안으로 채워줄 수 있는 소박한 예술을 갈망했다.
같은 책, 546쪽.
080618공자는 인애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구체적인 덕목으로 규정지어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떻게 인애의 방법을 실행해야 하는가를 제시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충서忠恕의 도이다. 공자는 말했다.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함에 남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함에 남도 통달하게 하는 것이다. 가까운 데에서 취해 비유할 수 있으면, 능히 인을 하는 방법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또 말하였다. "자신이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강요하지도 말아야 한다."
- 천웨이핑(지음), 신창호(옮김), <<공자평전>>, 미다스북스, 2005, 150쪽.
080501
첫째, 모두가 쓰는데...... 하는 질문인데,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좀 달리 가지는 수밖에 없다. 어떤 말이 잘못된 말이라면 세상 사람 모두가 쓰더라도 나만은 안 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 아닌가. 세상 사람 모두가 도덕질하는 판인데 나도 도덕질을 해야지, 이래서는 안 된다. 또 이런 질문은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은 할 자격이 없다.
- 이오덕(지음),《우리말 바로쓰기3》, 한길사, 2004. 7쪽.
080421
최고의 덕은 우리들 속에 있는 최선의 부분의 덕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본성을 지배하고 인도하며 또 아름답고 신적인 것들을 상념하는 이 부분이 이성이건 혹은 다른 어떤 것이건, 또 그 자체가 신적이건, 혹은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신적인 것이건, 하여간 그 고유한 덕을 따른 이것의 활동이 완전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이 활동이 관조적인 것임은 이미 말한 바 있다. (...) 그것이 가장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 응당 이 활동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행복이라 아닐 할 수 없다. 물론 이렇게 되는 데는 이 활동이 전생애에 걸쳐야만 한다. (...) 하지만 이러한 생활은 인간에게는 너무나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인 한에서가 아니라 인간 속에 신적인 그 무엇이 있는 한에서이니 말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지음), 최명관(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 서광사, 1987. 300-302쪽.
080218
보편적인 것에 대한 학문적 인식을 가진 사람은 그 보편자에 속하는 것을 모두 안다. 그런 뜻에서 보면, 가장 보편적인 것을 아는 사람은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가장 보편적인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은 '있다'. 따라서 '있음(einai)' 또는 '있다(esti)'는 모든 것에 속하는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지혜는 있는 것에 대한 탐구, 존재론이 된다.
조대호(역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문예출판사, 2005, 57쪽.
080214
원리, 원소, 원자, 물질, 정신, 영혼, 질료와 형상, 가능태와 현실태, 실체와 속성, 존재와 생성, 인과관계, 전체, 의미, 목적, 개념, 이념, 범주, 판단, 추리, 증명, 학문, 가설, 이론, 요청, 공리 등의 개념들은 그리이스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힐쉬베르거(지음), 강성위(옮김), <<서양철학사(상)>>, 이문출판사, 1988, 45쪽.
학문적인 형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동기를 제일 처음으로 부여했다는 사실이, 탈레스로 하여금 실제로 철학의 아버지가 되게 했던 것이다.
같은 책, 56쪽.
탈레스는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근거를 처음으로 문제 삼았다. 아낙시만드로스에게 모든 존재에 공통적인 보편적 원질은 가능한 한 규정되지 않은 것이었다. 즉 철저한 추상 과정을 거쳐 모든 특수한 것을 도외시함으로써 아페이론(Apeiron)에 이른다. 피타고라스학파에 이르러, 존재자의 원리를 질료가 아닌 형상에서 구하게 되었으며, 수와 형상이 있는 곳에 항상 질료가 있음을 언급함으로써 밀레토스학파가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설명했다.
080210
뉴턴 자신은 자신이 전적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기보다는 선배들이 이미 예견했던 바를 구체화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조지 맥도널드 로스 (지음), 문창옥 (옮김), <<라이프니츠>>, 시공사, 2000, 59쪽.
080124
변화란 변화하지 않고 한결같이 머물러 있는 그런 어떤 것에만 있을 수 있다. 즉 변화란 A라는 사물이 B라는 사물과 바뀌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 변화를 할 때에는 항상 어떤 것은 한결같이 남아 있고 변화할 수 있는 규정들만 바뀔 뿐이다. (...)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변화될 수 없는 것만 변화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는 것은 교환(바꿈)을 할 뿐이다.
- N. 하르트만(지음), 강성위(옮김),《철학의 흐름과 문제들》, 서광사, 1989, 74쪽.
080107
과학은 무지개를 조각조각 분리하는 듯한 순수한 분석 또는 환원법이고, 예술은 그 무지개를 맞추어 놓는 순수 종합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상상은 자연의 분석에서 출발한다.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조각 작품 속에서 암시적으로 그 점을 생생하게 증언했고, 창작 행위를 소재로 한 그의 소네트에서 분명히 말했다. 석공과 마찬가지로 조각가는 자연의 내부에 있는 형태를 더듬어 찾고, 그 조각가에게 있어 그 형태는 그 안에 이미 존재한다.
"가장 뛰어난 예술가는 드러내려고 생각지 않노라.
대리석의 마력을 풀어헤치는 것,
그것이 뇌에 봉사하는 손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니라."
- 브로노프스키(지음), 김은국(옮김),《인간등정의 발자취》, 범양사, 1998, 99쪽.
플라톤은 위대하다.
유클리드는 분명히 피타고라스의 전통에 속해 있었다. 청중의 한 사람이 그에게 피타고라스 정리의 실용적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유클리드는 자기 노예에게 경멸어린 어조로 이렇게 지시했다고 전한다. "저 사람은 학문에서 이득을 얻으려 하는구나 - 1전을 주어라."
- 같은 책, 145쪽.
070410
나는 게으른 어부다. 한데 요즘엔 그 짓도 싫증이 났나 보다. 그늘에 앉아 그물코를 손질하고 있다. 그물을 손질하며 꿈꾼다. 커다란 물고기. 꼭 그 물고기를 잡고 싶어서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물을 손질하는 동안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내 앞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이 수필집은 내가 놓쳐 버린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내 나이 스물둘, 대학 졸업하고 방위 소집해제된 두어 달이 지난 한 여름, 유난히 취업이 힘들었던 해. 흑석 2동 침수지구. 하늘색 페인트로 덧칠이 된 진초록색 대문의 아래쪽 반은 지난해 물이 찼었기 때문에 칠이 다 일어나 있었다. 그 대문이 유독 기억에 선명한 것은 그 대문을 안에서 열 때는 언제나 희망이었지만 들어와 빗장을 걸 때마다 절망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문 앞에서 얼마나 망설였던가.
서른 즈음 당신들은 세상에 아주 익숙하다. 이제 후각으로 날씨를 안다. 눈 오는 냄새, 비 오는 냄새, 기다림과 이별과 사랑의 냄새를 안다. 모든 인연의 중심에서 균사 같이 인연이 또 피어난다. 아이가 입학할 때 당신은 느낄 것이다. 당신이 부모와 너무 닮았다는 것과 아이가 당신을 따라 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인 또는 답답함. 세상에 익숙해지지만 못 가 본 세상은 오히려 더 넓어진다. 킬리만자로는 더 멀어지고 파푸아뉴기니는 이제 자신의 지도에서 지워버린다.
행복이 뭐냐고, 인생이 뭐냐고 치받으면 대답은 뻔하다. "커보면 알아." 그러나 어른들이 스스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모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들이 대화에 끼어드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 수 있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나서지 마라." 이 말은 거짓말이 들통나기 직전에 하는 최후통첩이다.
수많은 거짓말 중에는 눈물겨운 거짓말도 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기의 인생이 왜곡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원래는 피아노 연주자가 되었어야 하는데 정치가가 되었다든지, 그때 잘 벌었던 돈을 관리만 잘했더라면 여생이 편안할 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유산도 적지 않았으리라든지 하여간 뭔가 잘못된 구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눈물 나는 대목은 그 다음이다. 이것도 물론 거짓말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이 한 마디로 거짓말로 점철되는 생을 정리하는 것이다. (...) 아이들은 어른들의 본질적인 거짓말을 흉내내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거역할 수 없는 진실성을 흉내낸다.
- 김창완, <<이제야 보이네>>, 황소자리, 2005.
070409
오늘 나는 기쁘다. 어머니는 건강하심이 증명되었고 밀린 번역료를 받았고 낯의 어느 모임에서 수수한 남자를 소개받았으므로
- 최승자, "즐거운 일기" 일부
070319
양말을 뒤집어도 바지를 털어도 모래투성이다
아이는 매일 모래를 묻혀 들어온다
그리고 모래알보다 많은 걸 배워서 들어온다
- 나희덕, "황사 속에서" 일부.
30평은 30평끼리
17평 주공은 17평 주공끼리
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짝을 맞추어 잘 노는 아이들
(...)
뛰놀 만한 언덕 하나 없어
5층 아파트 옥상에서 연을 날리며
얼레를 풀어 동심을 날려보내는 아이들
- 나희덕, "어떤 아이들" 일부.
열쇠를 안에 둔 채 잠겨진 방은
어떤 의미로든 우울하다,
일자리를 놓쳐버린 아버지처럼
잠겨진 방문은 열려고 흔들어댈수록
더욱 고집스러워진다,
사춘기의 빗나간 아우처럼
아버지, 하고 불러보지만 돌아앉으시고
아우야, 어깨를 다독거려주지만 손을 뿌리친다
눈가가 거무스레 늙으신 어머니,
방안에서는 낡은 형광등이 껌벅거린다
희미한 눈빛으로 울먹이고 있다
방은 터널처럼 길고 어두우며
오랜만에 돌아온 나에게는
열쇠가 없다,
멀리서 옛날의 가족 사진이 웃고 있다
- 나희덕, "열쇠" 전문.
070306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거나 주입하는 일이 아니라 영혼을 전향케 하는 기술이다." - 남경희, <<플라톤>>, 아카넷, 2006.
070221
"다른 행성들이 천왕성의 궤도와 계산에 의한 궤도 사이에 오차가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여기서 프랑스 천문학자 르베리에와 영국 천문학자 애덤스는 태양계에 또 다른 행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고, 어디에 얼마만한 크기의 미지의 행성이 있어야 하는지를 계산해 냈다. 1846년 그들이 예측했던 바로 그 곳에서 해왕성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행성인 해왕성의 궤도를 주의 깊게 연구해 본 결과, 또 하나의 행성이 더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930년에 명왕성이 발견되었고, 섭동에 대한 나머지 의문은 대부분 풀렸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행성들의 중력을 종합적으로 계산할 때, 아직도 행성들의 궤도에 약간의 오차가 있는지에 대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 오차는 매우 작은데, 관측상의 작은 오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아니면 새로운 행성이 또 존재할지도 모른다)."
- 나단 스필버그/브라이언 D. 앤더슨(지음), 이충호(옮김), <<우주를 뒤흔든 7가지 과학혁명>>, 새길, 1995.
- 아리스토텔레스가 "물체는 왜 운동을 계속하는가?"라고 물었던 것을, 뉴턴은 "물체는 왜 운동을 멈추는가?"라고 바꿔 물었다.
- 코페르니쿠스의 전회는 혁명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이 뉴턴에 의해 완수되기까지 150년이 걸렸다.
-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가 정확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편, 티코 브라헤 역시 케플러의 수학적 능력을 알고 있었다." 케플러는 브라헤의 조수가 되었고, 자신의 학설을 정립했다.
070129
실낱보다 가늘은 음모와
그 음모에 걸려든 더욱 약한 자들
- 박상천, '거미줄', 부분.
070127
"앙리 르페브르와 같은 비평가는 구조주의가 내포하는 역사적 발전에 대한 무관심은 기존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반혁명적 방어라는 점에서 하나의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도구라고 비난한다."
- 레비스트로스(지음), 박옥줄(옮김), <<슬픈열대>>, 한길사, 2003, 역자 해설.
[070127]
"1704 년 출간된 <<광학>>은 여러 판을 거듭했으며, 가장 영향력이 큰 실험과학책이 되었다. 이것은 철저히 경험적인 책이라는 점에서 수학적 방법으로 일관한 <<프링키피아>>와 대조적이다."
- 김영식 외, <<과학사>>, 전파과학사, 1995.
070119
"그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돌아와 돌 위에 이 모든 이야기를 새겼도다." - <<길가메시 서사시>>
070113
"필경사는 하루에 보통 가로 25-30센티 세로 35-50센티 크기의 양피지 2절판을 네 쪽 정도 쓸 수 있었다."
- 서지학개론편찬위원회, <<서지학개론>>, 한울아카데미, 2004.
070107
"젊을 적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곡에 관해 강의한 모어는, 신이 잠시 살아도 부끄럽지 않을 인국을 건설하려고 원했던 것이다."
- 브로노프스키/매즐리슈(지음), 차하순(옮김), <<서양의 지적 전통>>, 홍성사, 1982.
070105
"충동적인 영감은 정신적인 설사와 같다."
" 창작과 번역은 둘 다 글쓰기 작업이다. 그래서 창작과 번역은 여러 면에서 기본적인 원칙이 서로 같다. 어휘의 선택과 구사 방법도 같고, 그래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없앤다.'라는 원칙 또한 번역에서나 마찬가지로 창작에서도 유효하다.
"하얀 한복에 김칫국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김칫국물 한 방울이 더럽다 하지 않고 한복이 지저분하다고 말한다. 그까짓 얼룩 그냥 못본 체하면 안 되느냐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면 안 된다."
" 처음부터 끝까지 구어체로 쓴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보면 정말로 술술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사람의 얘기처럼 부담 없이 읽힌다. 하지만 그렇게 술술 읽히게 하기 위해서 작가 J. D. 샐린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하나하나의 단어를 정성스럽게 다듬었을지 생각해보라."
"할 말이 있으면, 분명하고 자신만만하게 해야 한다."
"거느려야 하는 어휘 수가 늘어나고 기교와 순발력이 능해지면 문장에서는 힘이 빠진다. 그것이 장식적인 글쓰기의 약점이다."
"진실과 논리는 아무런 꾸밈도 필요없다. (...) 거짓말에는 이자가 붙고, 그것도 복리 이자여서, 첫 단추가 진실이 아니면 점점 더 많은 거짓말을 이어 붙여야 한다."
" 소설은 사실보다도 더 사실적이어야 한다. (...) 진실을 얘기할 때는 빈틈이 어느 정도는 용납되지만, 거짓말은 완벽해야 한다. (...) 장편소설의 마지막 두 쪽에 담긴 거짓말을 독자들로 하여금 믿도록 설득하기 위해 나는 3백이나 4백 쪽에 걸쳐 진실만을 얘기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통제가 안 되면 아예 입을 다물어라. 헤픈 얘기를 버리고, 보다 알찬 소재를 찾아보라."
"나는 번역을 할 때는 아무리 길더라도 한 문장은 꼭 한 문장으로 번역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곤 했다."
"말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이것은 글쓰기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아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가르침이다. '그는 키가 크다'라고 하는 대신 '그는 키가 184센티미터이다'라고 써 놓은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해보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만큼만 해도 되는 (...) 이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자신을 엄격히 통제하는 간단한 의무마저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 안정효, <<글쓰기 만보>>, 모멘토, 2006.
[060926]
"Cyberspace. A consensual hallucination experienced daily by billions of legitimate operators, in every nation, by children being taught mathematical concepts. A graphic representation of data abstracted from banks of every computer in the human system. Unthinkable complexity. Lines of light ranged in the nonspace of the mind, clusters and constellations of data. Like city lights, receding," - William Gibson, Neuromancer
[060926]
"떠날 사람은 새 것을 보지 않네. 익숙한 것을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 본다네."
"어떤 사람들은 느리게 살자는 말을 하더군. 하지만 틀렸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야. 느리게 살자는 깨달음은 며칠 못가. 불안해서 결국 다시 속도를 내지. 빠른 것의 대안은 느린 것이 아니야. 멈추는 거야."
"깊이는 넓이를 만들 수 있지만 넓이는 깊이를 만들 수 없네."
"시간의 덩어리가 필요하네. 시간은 특이하게도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작지."
- 전병국,《Delete!》
소설적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을 때, 그렇게 쓰면 그것은 허구가 아니다.
[060914]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이정록, "의자", <<의자>>, 전문.
[060907]
사람들은 조금씩 빨라진다
속도가 두려움을 만날 때까지. 그러나
의사의 기술처럼 간단히 필라멘트는
가열되고 기계적으로 느슨히
되살아나는 습관에 취할 때까지 적어도
복잡한 반성 따위는 알코올 탓이거니 아마
시간이 승부의 문제였던 때는 지났겠지.
- 기형도, "종이달", <<입 속의 검은 잎>>, 일부.
[060702]
"미디어 역사는 유통 과정을 지배하는 것이 시장 지배력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담배 회사의 광고에 종속된 미국 언론의 슬픈 역사는 일상적으로 행해지지만 대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스폰서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엄연한 증거물이다. 1992년 미국 잡지 99종을 분석한 미시간 대학의 한 연구는 담배 광고가 없는 잡지는 그렇지 않은 잡지보다 흡연 및 건강에 관한 기사를 실을 가능성이 40%나 높고, 여성 잡지 역시 담배 광고에 의존하지 않는 경우 이 주제에 관한 기사를 실을 가능성이 23%나 높다고 밝혔다."
- 댄 쉴러,《디지털 자본주의》
[060602]
"레우키푸스와 데모크리토스에 의해서 원자 개념에 대한 진일보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와 비존재간의 대립을 '차 있는 공간(Full)'과 '빈 공간(Void)' 간의 대립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들의 존재개념은 파르메니데스와 같이 유일성의 존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의 존재는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으면서도 서로 독립적 단위체인 원자라고 하는 것이다. 원자는 영원하며 파괴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아주 작지만 물리적 크기를 갖는다. 또한 원자들 사이의 빈 공간을 인정함으로써 운동의 개념을 설명한다. (...) 많은 철학자들은 공간 개념을 물체의 연장으로 정의하였으나, 데모크리토스에게는 단순히 변화와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공간이었다."
"확률함수는 두 가지의 양면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객관적인 사실 자체이고 또 한 가지는 그 사실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인식 과정이다. 확률함수는 초기 상태에 확률 단위값(즉 확률적이 아닌 완전히 확실한 값)이 부여될 때만 객관적 사실을 나타낸다. 운동하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관찰한다고 할 때, 이 때의 '관찰'이란 의미는 당시의 실험상황 내에서만 정확성을 갖는 관찰을 의미한다. 즉 다른 사람이 다른 상황에서 관찰했을 때 더 정확한 값을 얻을 수도 있다. 실험 과정에서 생기는 오차는 전자 자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전자에 대한 관찰자의 인식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인식의 불완전성 혹은 인식의 주관성을 확률함수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 확률함수의 해(solutions)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변한 결과를 의미한다. (…) 확률함수는 양자론의 중심개념이다."
- 하이젠베르크(지음), 최종덕(옮김),《철학과 물리학의 만남》, 도서출판한겨레, 1986.
[060525]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도 키르케고르는 인생의 불안, 권태, 절망을 시인답게 읊조린다.
아, 불안의 물음표와 절망의 느낌표들이여.
- 시인이란 어떤 인간인가?
- 인간이란 참으로 부조리한 존재다!
- 웃음이 사실은 울음이라고 한다면?
- 어째서 나의 영혼은 이다지도 메말라 있는 것일까!
- 과연 미래는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가?
- 천진난만한 인생의 향락!
- 나는 무엇에 쓸모가 있는 것일까?
- 인생이란 얼마나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일까!
- 처참한 운명이여!
이 책의 서문은 헤겔 비판으로 시작한다. 키르케고르는 역사를 無化한다.
" 불안을 통하여 실존은 신 앞으로 인도되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 함은 원시그리스도교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와 동시적으로 되고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이천년의 역사를 과거로 비약하는 것이요, 이천년의 역사를 無化하는 것이다." - 소광희/이석윤/김정선,《철학의 제문제》
[060525]
"실존은 Existenz의 번역이요 이 말은 중세의 existentia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중세 때 본질에 대립하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이때 본질이란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그것은 책상이다'라고 할 때의 책상은 그것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예로 하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 모양이나 색깔 말고 그 개체로 하여금 바로 책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대 플라톤은 그것을 책상의 이데아라고 했다. '그것은 책상이다'라고 답할 때의 책상이란 이 이데아로서의 책상을 말하는 것이요, 이 이데아가 바로 본질인 것이다. (…) 그것은 영원불변한 실재이다. (…) 만물이 있기 위해서는 그 원형으로서의 이데아가 먼저 있어야 하며 이것을 본따서 만들어진 만물은 본래의 실재에서 파생된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본질은 언제나 존재에 앞서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은 현실존재가 사물인 경우이지, 특별히 인간일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 한전숙,〈실존주의〉,《현대의 철학1》, 서울대출판부, 1997.
[060518]
"카알라일이나 쇼펜하우어로 하여금 외딴 문명이나 이상화된 과거로 도피하게 하고 자기 시대에 대한 최대의 적인 니체를 히스테리와 광기로 몰고 간 어지러운 시대에 오직 마르크스만이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자신을 지켰다."
마르크스는 끝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 강유원,《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060517]
"그들은 여덟시에 잠자리에 들어 여덟 시간 잡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보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을 더 받는 데 이 여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공개 강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계급이나 남녀의 구별없이 강좌를 들으려고 몰려듭니다.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취향에 맞는 강좌를 청강합니다." - 토마스 모어,《유토피아》
[060511]
1852년 : 마르크스,《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자본을 ‘흡혈귀’에 비유.
나뽈레옹 치하에서 농촌에서의 토지 분할은 도시에서의 자유 경쟁과 막 시작되고 있던 대공업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 분할지 소유가 프랑스 땅에 내린 뿌리는 봉건주의로부터 모든 영양분을 빼앗아 갔다. (…) 그러나 19세기가 진행되면서, 봉건 영주 대신에 도시의 고리 대금업자가, 토지의 봉건적 의무 대신에 저당권이, 귀족의 토지 소유 대신에 부르주아의 자본이 등장했다. (…) 이처럼 자본의 노예가 된 분할지 소유는 프랑스 국민의 대다수를 혈거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 금세기 초에는 방금 생겨난 분할지에 국가를 보초로 세워 주고 월계관으로 비료를 주던 부르주아적 질서가, 이제는 분할지의 심장의 피와 뇌수를 빨아먹고 그것을 자본의 연금술 냄비에 던져 버리는 흡혈귀가 되어 있다. 이제 나뽈레옹 법전은 집행, 공매, 강제 경매의 법전에 지나지 않는다. -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지음), 최인호 외(옮김),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2003, 386쪽.
1867년 : 마르크스,《자본》에서 자본가를 ‘흡혈귀’에 비유.
자본가로서 그는 오로지 인격화된 자본일 뿐이다. 그의 영혼은 자본의 영혼이다. 그런데 자본은 단 하나의 생명 충동 즉 자신을 가치증식하고 잉여가치를 창조하며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양의 잉여노동을 자신의 불변부분인 생산수단으로 흡수하려는 충동을 갖고 있다. 자본은 이미 죽은 노동으로서, 이 노동은 오직 흡혈귀처럼 살아 있는 노동을 흡수함으로써만 활기를 띠며 그리고 그것을 흡수하면 할수록 점점 더 활기를 띠어 간다. – 칼 마르크스(지음), 김영민(옮김),《자본1-1》, 이론과실천, 1990, 292쪽.
거래가 끝난 뒤에 그는 결코 자신이 ‘자유로운 거래자’가 아니었다는 것, 자신이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시간은 노동력을 팔도록 강제된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사실상 그의 흡혈귀는 “아직 한 조각의 근육, 한 가닥의 힘줄, 한 방울의 피라도 남아 있는 한,” 결코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같은 책, 377쪽.
* 자본주의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홉스봄에 따르면] 1860년대 이후.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흡혈귀에 비유한 것은 마르크스 이전에 누군가 했을 법도 한데... 누가 먼저냐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지만, 궁금해서.
* 기타 잡다한 메모 :
1710년 : 페스트 창궐, 프로이센 강타, 사람들은 흡혈귀가 페스트 원인이라고 생각함.
1725년 : 죽었던 농부 플로고요비츠가 나타나 주민 8명을 죽였다는 사건(소문) 발생, 이 사건의 기록 과정에서, 뱀파이어라는 말의 기원인 독일어 vanpir가 문서에 처음 사용됨.
1732년, 1733년 : 뱀파이어가 헛된 미신이라는 것을 규명하는 [계몽주의자들의] 논문 두 편이 [독일 예나 등에서] 출간됨.
18세기 말 ~ : 낭만주의자들 작품 속에서 부활, ‘흡혈귀’ 자주 등장.
1819년 : 흡혈귀를 주인공으로 다룬 첫 작품, John Polidori, The Vampyre
1847년 : 역시 동일한 소재의 작품, James Rymer, Varney the Vampyre
* “1867 년에 쓴《자본》에서, 뱀파이어 비유를 하면서, 마르크스는 어떠한 문학 텍스트나 특정 구전[설화]도 언급하지 않았다. (…) 아마도 그의 은유는 구전에 의거한 것일 테지만, 또한 뱀파이어를 다룬 19세기의 [새로운 장르의] 문학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 http://www.le.ac.uk/ulmc/doc/cjones_vampires.pdf
* “뱀파이어는 마르크스의 텍스트에서 여러 다양한 역할을 한다.” - Martin Parker, Organisational Gothic
* "자본가는 드라큘라와 같은 존재다. 그가 어떻게 성의 주인이 되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중요한 것은, 사람들 피를 빨고 있다는 사실이다." - Franco Moretti
[060507]
양자 역학[量子力學] (명) [quantum mechanics] [물] 거시적인 물체에 대해서 성립하는 고전 역학에 대해서, 에너지에 소량이 있다는 양자론을 따라 전자, 원자, 분자, 광자, 복사 등 미시적인 대상을 역학적으로 다루는 학문. 1925년경 연구된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과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이 나중에 하나로 통일되어 양자 역학이라 이르게 됨.
코 페르니쿠스적 전회[- 的轉回] (명) [도 Kopernikanische-Wendung] [철] 칸트가 그의 입장을 특징지운 말. 곧 인식이 대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대상이 주관에 따르며 주관의 선천적인 형식에 의하여 구성된다고 하여 인식 대상은 현실에 불과하며 물자체가 아님을 주장,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비유하여 일컬은 말. 이후 종래의 정설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내세움을 일컫게 됨.
- 이희승 편,《국어대사전》, 민중서림, 1982.
[060506]
《칸트 철학에 관한 편지들》이란 책을 가지고 칸트의 학설을 전파하고 올바르게 이해시키려고 애쓴 사람이 라인홀트였다. 라인홀트는 어려운 문제들을 간단하고 명료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 사람들은, 칸트의 비판이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문으로서 나타나게 될 미래의 형이상학에 대한 서곡"(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treten können)이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우리들이 형이상학을 개관할 때는 형이상학은 마치 하나의 폐허와도 같다. 그야 물론 그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참된 인식들이 있었으나, 사상가들은 항상 그 한계를 짓밟고 넘어섰으며, 또 그 참된 인식들을 일반화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우선 한계선이 그어져야만 했고 또 기초가 놓여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칸트의 비판은 사실에 있어서는 우리들의 시대에도 계속 연구되어야 할 하나의 새로운 세계관을 건설하는 출발점인 것이다.
- 니콜라이 하르트만(지음), 강성위(옮김),《철학의 흐름과 문제들》(Einführung in die Philosophie, 1949), 서광사, 1989, p. 88.
"한 위대한 연구자가 어떤 것을 발견한 후에는, 발견의 기쁨에 도취되어서 그것을 모든 영역에다 옮겨 놓으려고 한다. 발견자가, 자기가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일은 드물다. (…) 표제개념 속에 나타나는 주의(-主義, -Ismen)들은 항상 이런 온당하지 못한 전용이거나 과장일 수 있다." - N. 하르트만
쿠자누스는, 원을 무한히 확대하면 직선이 되고, - 마치 地球의 평평함처럼 - 원의 직경을 줄이면 마침내 점이 되듯, 대립하는 것(직선과 원)의 일치를 통해,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무한자를 직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르트만에 따르면] 이러한 생각이 라이프니츠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라이프니츠는, 물체는 연장을 지니는 한 무한히 쪼개질 수 있기에 하나의 단자는 될 수 없다고 했다. 단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따라서 물질적인 것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단자는 수학의 점처럼 추상적인, 그러나 실재하는 그러한 존재이어야 했다. 인간의 정신이 그러하다. 인간 정신은 점과 같이 하나이면서 무한한 多를 표현한다. 정신에 多가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 자체로 하나인 정신이 多를 표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모두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수만큼의 세상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엄연히 하나로만 존재한다. 다양한 세상들은 표출된 多이다. [그런데] 이 단자는 밖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단자에게는 창문이 없기 때문이다.
미분과 적분의 개념은 이미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있었고, 또 활용되었다. 그것을 수학적 체계로 창안한 것은 뉴턴과 라이프니츠다. 미분과 적분의 단초와 성과는 형이상학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
형상(eidos)은 일종의 원형(原型)으로, 개별 사물들은 그것을 모방하여 그에 가까워지며, 그리하여 이데아의 세계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원래부터 이데아의 세계를 알고는 있지만, [평소에는]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상기(anamnesis : 뒤에 깨달음, 이끌어 올림, recollection)해야 한다. 능숙한 대화법을 통해 영혼의 깊은 곳에서 그것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그러한 방법을 취한 이가 소크라테스였다.
[060505]
- 교환은 보편성의 이념을 낳는다.
- 신념, 가령 종교는 교환 행위에는 적절한 것이 아니며 그런 것을 고려한다는 것은 어색한 일일 것이다.
- 관용의 정신은 교환 관계의 발달로 야기된 사고다.
- 교환이 세계적 차원으로 진행되기 이전의 시대에는 관용이 필요없었다.
- 교환은 자유롭고 평등한 쌍방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자유의 제한은 교환관계를 깨뜨린다.
- 교환은 쌍방 모두 그들이 교환하려고 하는 상품에 대한 처분권을 가졌을 때에만 성립한다.
- 교환에 입각한 정신의 주요 범주 : 개인주의, 계약, 평등, 보편성, 자유, 사유재산권
* 참조 :《계몽주의의 철학》
"시민사회는 등가원칙에 의해 지배된다. 시민사회는 '동일하지 않은 것'을 '추상적인 크기'로 환산함으로써 비교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계몽주의의 변증법》
* 가치 : 노동량으로 측정되는 교환 대상인 상품 요소 (마르크스)
《계몽주의의 변증법》이 밝히고자 하는 주된 과제 : "왜 인류는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졌는가?"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의 와중이었다.
도요과(科) - Scolopacidae : 좀 도요, 종달도요, 메추라기도요, 민물도요, 송곳부리도요, 붉은갯도요, 붉은가슴도요, 붉은어깨도요, 꼬까도요, 세가락도요, 넓적부리도요, 누른도요, 붉은배지느러미발도요, 지느러미발도요, 큰지느러미발도요, 목도리도요, 학도요, 붉은발도요, 쇠청다리도요, 청다리도요, 큰노랑발도요, 청다리도요사촌, 뒷부리도요, 삑삑도요, 알락도요, 노랑발도요, 깝작도요, 흑꼬리도요, 큰뒷부리도요, 큰부리도요, 긴부리도요, 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 중부리도요, 쇠부리도요, 꺅도요, 바늘꼬리도요, 멧도요, 꼬마도요, 멧도요
구별-분류-확장-구별-분류-확장
오성적 인식은 점 하나에 하나의 측면을 고정한다. 가령, 디드로의 <백과전서>
* 디드로는 계몽주의자였지만, 계몽주의가 지닌 문제점을 가장 뚜렷하게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라모의 조카>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이 바로 그러한 문제점들이다.
계몽주의는 정서를 배제한다. 계몽주의는 목적이 없다. 오성적 태도로 사물을 분별하고 정리정돈하면 끝이다. 칸트는 계몽주의의 완성자다. 순정철학으로서의 칸트에게는 모험이란 없다. 벌린에 따르면 낭만주의자냐 아니냐 하는 기준은 자신의 태도에 대한 신념, 열광이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관념론을 보자. 《독일관념론의 철학》은 칸트 이후 철학의 전개를 다룬다. 이것을 읽고 이사야 벌린의《낭만주의의 뿌리》를 읽으면 좋다. - 강유원, “헤겔〈정신현상학〉서문 강독” 에서.
[060504]
"오성은 자기자신이 대상이 되는 이성이다." -《헤겔 예나 시기 정신철학》
[060221]
“생명의 진화에 있어 자연은 용서가 없다. 즉 자연은 차별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열등자의 인도적 절멸’로 대치되기에 이른다. 흄은 ‘순수한 인류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과 같은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근대 과학은 왜 이러한 감정이 필요하지 않은지를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그들은 확실성을 얻고자 ‘플라톤과 종교’를 포기하였으나 거기서 얻은 바가 아무것도 없었다.”
“극적인 변동이라는 것이 대개 일련의 사람들을 비슷한 또 다른 일련의 사람들로 대체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역사는 대체로 공허한 이름들의 변화로 나타난다. 자유의 섬광은 역사를 통해 산발적으로 생겼다가 소멸하였다.” - 화이트헤드,《관념의 모험》
[060221]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 진은영, ‘가족’,《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사, 2003.
[060216]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가볍고 동동 뜨는 것들만 실어 나르고, 무겁고 견고한 것은 가라앉히고 만다.” - 프랜시스 베이컨,《신기관》
'05.10.31.
"정복하기는 통치하기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길이가 충분한 지렛대가 있으면 손가락 하나로도 세계를 움직일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떠받들고 있으려면 헤라클레스의 어깨가 필요할 것이다." - 나탄 샤란스키, <<민주주의를 말한다>>
'05.10.31.
"자본은 흡혈귀와 같다. 해설하라."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 예를 들어 설명하라."
- 김수행,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 "[부록] 시험문제 모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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