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기호로 그대로 축소하여 옮겨놓으면 지도가 된다. 지도는 추상화한 세계다. 가끔 정확한 지도보다 펜으로 대충 그린 약도가 더 쓸모있다. 이때 약도는 지도에 대한 추상이다. 몬드리안은 구상적 세계를 추상하고 또 추상하여 몇 가지 색, 몇 가지 면과 선으로 세계를 표현했다. 추상이라는 세계에 관해 알고 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추상은 원 대상을 온전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다만 적절하게 구현한다. 똑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예술가들의 해석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고전물리학은 인간의 주관과 별개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신념을 추상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우주를 균형과 조화를 이룬 거대한 공식으로 추상했다. 포물선 운동을 좌표에 수학 기호로 추상하면 포물선이 그려진다. 손에 잡히지 않는 현상이 기호로 구현된다. 그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다. 수는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설명하는 언어다. 자연에 관해 기술할 때 과학자들은 수학적 언어로 표현하며 이것을 일반 언어로 옮기는 것은 과학자의 중요 과제다.
섭씨는 물이 어는 온도를 0도로 정한다. 화씨를 창안한 다니엘 파렌하이트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를 0도로 정했다. 참 소박했다. 캘빈은 자연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를 0도로 정했다. 열과 온도의 관계는 질량과 무게의 관계와 같다. 열과 질량은 변치 않는 실체이지만 온도와 무게는 측정 방식에 따라 다르다. 무게와 온도가 바로 추상이다. 하나의 실체를 다르게 기술한다. 라이프니츠에게 인간 정신은 하나인 점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다(多)였다. 하나인 정신이 다(多)를 표출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모두 각자 시선으로 바라보며, 세상은 사람 수만큼 있는 것 같지만, 분명 세상은 엄연히 하나만 존재한다.
영화를 감상할 때 극장 등이 꺼지면 스크린만 보인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일, 그것은 인간 행동에서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다. 중복 정보, 깨진 링크 같은 것을 걸러내는 것은 검색 엔진이 하는 주된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느니 하는 말은 추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인간에겐 대상을 일반화하고 추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때부터 인간은 모든 것을 추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신까지 추상했다. 이때 적용한 추상 기법은 계량화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수량으로 측정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금전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앵커가 ‘이번 사건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1조원에 이릅니다.’라고 말한는 것이 계량화에 기반을 둔 태도다. 인간 노동은 노동시간으로 측정되고 이 문제를 칼 마르크스가 상세히 분석했다. 그에게 자본주의 세계를 설명하는 단초는 추상화한 인간 노동이었다.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가 돼버린 인간의 노동은 그저 노동량으로 측정되는 상품 요소일 뿐이다.
추상화는 세계를 측정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부정적 결과를 동시에 초래했다. 계량화가 주는 이점은 우선 편리하다는 것이다. 구글은 많이 찾은 검색 페이지를 상위에 올림으로써 편리한 검색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많이 본 포털 뉴스, 인기검색어 같은 것이 사회를 바라보는 척도가 되는 건 서글픈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추상 세계가 지배하는 과학 시대를 산다. 인터넷 네트워크 또한 추상화 세계다. 인터넷은 흔히 링크와 노드(링크가 만나는 분절점)로 구성된 네트워크 지도로 표현된다. 인터넷은 오프라인 세상을 축약한 만화경이다. 실체 없는 추상은 추상이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 인터넷이 지닌 무자비한 파급력, 인기검색어, 조회수 조작 허위 동영상, 자기동일성을 상실한 익명성이 불러일으킨 폐해는 이러한 허상 언저리에 기생한다. (<사이언스타임즈>, "인터넷 기술과 문화")
추상은 원 대상을 온전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다만 적절하게 구현한다. 똑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예술가들의 해석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고전물리학은 인간의 주관과 별개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신념을 추상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우주를 균형과 조화를 이룬 거대한 공식으로 추상했다. 포물선 운동을 좌표에 수학 기호로 추상하면 포물선이 그려진다. 손에 잡히지 않는 현상이 기호로 구현된다. 그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다. 수는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설명하는 언어다. 자연에 관해 기술할 때 과학자들은 수학적 언어로 표현하며 이것을 일반 언어로 옮기는 것은 과학자의 중요 과제다.
섭씨는 물이 어는 온도를 0도로 정한다. 화씨를 창안한 다니엘 파렌하이트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를 0도로 정했다. 참 소박했다. 캘빈은 자연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를 0도로 정했다. 열과 온도의 관계는 질량과 무게의 관계와 같다. 열과 질량은 변치 않는 실체이지만 온도와 무게는 측정 방식에 따라 다르다. 무게와 온도가 바로 추상이다. 하나의 실체를 다르게 기술한다. 라이프니츠에게 인간 정신은 하나인 점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다(多)였다. 하나인 정신이 다(多)를 표출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모두 각자 시선으로 바라보며, 세상은 사람 수만큼 있는 것 같지만, 분명 세상은 엄연히 하나만 존재한다.
영화를 감상할 때 극장 등이 꺼지면 스크린만 보인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일, 그것은 인간 행동에서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다. 중복 정보, 깨진 링크 같은 것을 걸러내는 것은 검색 엔진이 하는 주된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느니 하는 말은 추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인간에겐 대상을 일반화하고 추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때부터 인간은 모든 것을 추상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신까지 추상했다. 이때 적용한 추상 기법은 계량화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수량으로 측정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금전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앵커가 ‘이번 사건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1조원에 이릅니다.’라고 말한는 것이 계량화에 기반을 둔 태도다. 인간 노동은 노동시간으로 측정되고 이 문제를 칼 마르크스가 상세히 분석했다. 그에게 자본주의 세계를 설명하는 단초는 추상화한 인간 노동이었다.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가 돼버린 인간의 노동은 그저 노동량으로 측정되는 상품 요소일 뿐이다.
추상화는 세계를 측정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부정적 결과를 동시에 초래했다. 계량화가 주는 이점은 우선 편리하다는 것이다. 구글은 많이 찾은 검색 페이지를 상위에 올림으로써 편리한 검색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많이 본 포털 뉴스, 인기검색어 같은 것이 사회를 바라보는 척도가 되는 건 서글픈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추상 세계가 지배하는 과학 시대를 산다. 인터넷 네트워크 또한 추상화 세계다. 인터넷은 흔히 링크와 노드(링크가 만나는 분절점)로 구성된 네트워크 지도로 표현된다. 인터넷은 오프라인 세상을 축약한 만화경이다. 실체 없는 추상은 추상이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 인터넷이 지닌 무자비한 파급력, 인기검색어, 조회수 조작 허위 동영상, 자기동일성을 상실한 익명성이 불러일으킨 폐해는 이러한 허상 언저리에 기생한다. (<사이언스타임즈>, "인터넷 기술과 문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