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동료였던 공대 출신 마케팅팀 김 대리가 어느 날 기획팀 소속이었던 나에게 물었다. “너 국문과 대학원 다니다 왔지?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책 많이 읽고, 또 많이 써 봐야지. 글쓰기에 왕도가 어디 있어.”
참 개떡같은 조언이었다. 김 대리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도사 나셨구먼.’ 그 뒤로 김 대리가 글을 읽거나 쓰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글쓰기와 등 돌리고 살아갈 김 대리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때늦은 답변을 대신해 이 책을 쓴다.
김 대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기획서 구상에 관한 간단한 요령이었다. 개요를 잘 짜는 방법이 궁금했던 거지 문예공모전 나가서 상 타는 법을 물어본 게 아니었다. 나는 왜 김 대리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사이클 선수가 되는 법을 가르치려 들었을까. (...) 자전거 타는 방법은 사이클 황제 암스트롱에게 배우는 것보다 친구나 형한테 배우는 게 낫다. 싸보이지만 괜찮아.
고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교조주의가 무엇인지 물어본 적 있다. 선생님은 칠판에 한자로 적으며 한참 설명했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하는 척했다. 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친구에게 다시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곧이곧대로 하는 거 말야.” 간단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놈이 괜히 전교 1등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놈은 습득한 정보를 자기 방식대로 재정리하여 이해했기에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나를 쉽게 납득시킬 수 있었던 거다.
전자제품 사용자들은 딸려오는 매뉴얼을 달달 외지 않아도 된다. 당장 필요한 몇 가지 기능만 직접 눌러보고 익히면 그만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진사 정원(한석규)이 연로한 아버지(신구)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가 죽으면 비디오를 틀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유익한 것은 비디오 매뉴얼일까, 아들의 설명일까. 나는 한석규가 되어 신구 김 대리에게 비디오 켜기, 재생, 끄기, 이 주요 기능만 보여주려 한다. 빨리 감기, 되감기, 녹화방법은 뺐다. 세 가지 기초 기능만 숙달하면 필요할 때 스스로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은이의 말 중

- 빤쓰 줄여놨으니 돌아오라는 엄마 말씀에 집 나온 소년의 가슴에 울컥 뜨거운 것이 솟는다. 새 빤스 타이트하게 착용하고 이제 엄마 말씀 잘 듣고 새사람 되리라 두 주먹 불끈 쥔다. 돼지표 본드여 사요나라. 그게 개념 재규정이다. 자기 꼬라지를 알고 조금 더 나아지려고 하는 태도. 공자님, 소크라테스 선생 모두 비슷한 말씀 하셨다. 무식한 줄 모르면 유식해질 수 없다. 일단 니 주제파악을 해야 한다. 한예슬 언니가 ‘꼬라지 하고는’ 하고 말할 때 그거.
- 때와 장소에 적합한 합리적 의제 설정, 명쾌한 설명, 정확한 근거 제시, 절묘한 비유. 이런 것들이 바로 카테고리 신이 내리는 축복이다.
-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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