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욕망의 색
인간은 색의 물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무수히 많은 다른 것들 가운데 어떠한 한 가지 색조를 구별해 낸다. 우리는 색에 가치를 매기고 거기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에게 빨강만큼 많은 의미를 주는 색은 별로 없다. 세계의 수많은 언어 속에,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인 영어 속에 증거가 있다.
우리는 빨강 카펫을 밟고, 빨강색 손잡이가 달린 지팡이를 짚고, 빨강색 끈으로 봉인된 공무 집행 문서에 연루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빨간 불에 멈추고, 주제에 빗나간 이야기들(red herrings)을 무시하며, 달력 속 빨간 날을 경축한다. 정치적 신조에 따라 우리는 빨간 깃발을 흔들기도 하고 꿈 속에서 본 빨강에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뜨거운 분노를 억누르지 못할 때 우리는 ‘빨강을 본다(see red)’고 말한다.
이 많은 표현은 꽤 근대적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표현들이 쓰인 것은 삼백 년이 채 안 된다. 가령 1848년 유럽의 봉기 이래로 급진적 정치행동은 빨강으로 표현되었다. 반면 ‘빨강 봉인(red tape)’은 대영제국에서 공식 문서를 묶는 데 쓰인 빨강 리본에서 파생한 18세기 용어다. 물론 빨강 자체는 인간 영혼에서 더 깊은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많은 포유류가 빨강을 인식하는 데 곤란을 겪지만 인간의 눈은 그 색에 아주 민감하다. 빨강에 대한 친화력은 우리에게서 떼놓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것은 언어의 순서상 흑과 백을 제외하면 빨강이 다른 어떤 색보다도 오래된 고대의 말이기 때문이리라. 파랑이나 노랑 또는 녹색이 있기 이전에 피와 불의 색인 빨강이 있었다.
각양각색의 문화들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빨강은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에게 영향을 끼쳤다. 네안데르탈인은 철광석을 함유한 동굴벽에 그림을 그린 크로마뇽인들이 그랬듯 붉은 황토에 시체를 매장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빨강을 행운을 부르는 색, 부와 건강의 상징으로 여겼다. 아랍인들은 빨강을 종종 신의 축복을 가리키는 기호로 해석했고, 가끔은 저주받은 존재의 표식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빨강은 남성의 색이었고 열정과 생기를 상징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빨강이 위험을 알리는 전조, 악의 신 세트(Seth)에게 바쳐진 색이었던 반면, 사하라 남부에서 빨강은 고위 신분의 색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붉은 빛을 신의 불과 동등한 것으로 여겼다. 원시 사회에서 빨강은 악령을 퇴치하고 병을 치료하며 악마의 눈을 비껴갈 수 있는 신비한 힘을 지닌 색이었다.
세계 도처에서 빨강은 위험과 용기, 혁명과 전쟁, 폭력과 죄, 욕망과 정열, 삶 자체 같은 인간 삶의 핵심에 놓인 상황과 감정을 표현한다. 여러 시인들이 빨강을 노래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 내 사랑은 빨간, 빨강 장미 같도다.” 로버트 번즈는 이렇게 읊었다. 테니슨은 우리에게, 자연은 “이와 발톱을 세운 듯 흉폭하다(red in tooth and claw)”고 절규했다. 에밀리 디킨슨은 1866년에 이렇게 적었다. “삶을 음미했던 금요일, 서커스단이 그 집 앞을 지나갔다. 마음 속에 붉은 감정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어떤 색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색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수천 년 간 예술가들은 자연에서 보았던 불타는 듯한 주홍색과 진홍색을 되살려내려고 애를 썼지만 늘 좌절을 겪어야 했다. (중략) 코치닐을 향한 광적인 질주의 역사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난 창이다. 사람들은 코치닐을 손에 넣으려고 배를 약탈하고 염탐꾼이 되었으며 죽음을 자초하기까지 했다. 이 책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다.
[역자후기] 피의 색, 빨강
코치닐이라는 작은 곤충에 관한 이야기이자, 빨강을 통해 본 서양사 이야기인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인간 인식에서 빨강이 지니는 보편성에 관해 공감했다. 빨강은 피의 색이다. 훙분, 열정, 욕망, 투쟁, 희생, 혁명은 피가 지닌 붉은 메타포다. 사랑의 색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을 때 빨강 이외의 것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 어머니의 붉은 피를 몸에 휘감고 태어나기 때문이며,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섰을 때 붉은 심장이 요동치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붉은 피를 흘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보편 감정이다.
한국인들 역시 빨강을 그러한 것과 동일시한다. 또한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은 한국은 레드 콤플렉스의 그늘 속에 살고 있다. 2002년 여름에 붉은 물결이 광장을 열정과 흥분으로 물들였다고 해도, 빨강은 여전히 금기의 색이다. 세계 곳곳에는 붉은 머리띠를 두른 많은 사람들이 붉은 깃발을 흔들고 있다. 그것은 더 물러설 곳이 없는 이들의 피어린 외침이다.

이 책을 번역하며 마담엑스의 초상화를 처음 보았다. 창백할 정도로 흰 마담엑스의 목덜미와 얼굴, 선명히 드러난 붉은 귀와 붉은 입술을 보자, 에밀리 디킨슨이 기술한 것처럼 나도 ‘마음 속에 붉은 감정이 밀려왔다.’ 열정적이었던 티에리 드 메농빌이 코치닐을 찾기 위해 떠났던 흥미진진한 모험담 부분을 번역하면서 그런 붉은 감정이 되살아났다.
텍스트와 빨강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두루 연관된다. 구텐베르크 이전 시대에 필사는 단순히 베끼는 작업을 넘어선 창작에 가까웠다. 필경사들은 하루에 보통 가로 30센티 세로 50센티 크기의 양피지 2절판을 겨우 네 쪽 정도 쓸 수 있었는데, 길고 고된 필사 작업을 마무리하며 붉은색을 띠는 연단(minium)을 이용해 텍스트를 장식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작가들에게 빨강은 영원한 모티프였다. 한줌의 톱밥을 난로 안의 붉은 불빛 속으로 던져주던 시인의 경험 한 조각은 ‘사평역에서’라는 시로 태어났다. ‘손을 대도 데지 않는 그 불은’ 바로 붉은 꽃이었으며,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했던 그 혁명의 색도 바로 빨강이었다. 피의 색인 빨강은 활활 이는 불꽃처럼 뜨거운 색이다. 작가의 말처럼 빨강을 바라볼 때 우리는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빨강은 우리의 심박수를 높이며 호흡을 가쁘게 한다. 코치닐 시대가 끝났다 해도 빨강은 여전히 인간의 붉은 피 안에서 피와 한몸이 되어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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